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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에 도전하는 한국 기업문화, 파괴시대에 적합”
2016.12.09 11:12
정민정
“컴퓨터와 인공지능 때문에 20년 안에 현재 일자리의 절반이 사라질 겁니다. 이런 파괴적 시대를 넘어서는 혁신은 오직 사람에게 투자하고 조직의 문화를 바꿀 때 가능합니다.”
톰 피터스 박사(톰피터스컴퍼니 대표)가 혼돈의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 던진 메시지는 ‘사람’이었다. 그는 7일 동아일보와 채널A 공동 주최로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동아비즈니스포럼 2016’에서 기조강연을 통해 이를 거듭 강조했다.
○ “전략이 아닌 사람과 문화가 혁신의 키워드”
피터스 박사는 “최고경영자(CEO)와 경영진, 컨설턴트들은 ‘전략’에만 집중한다”며 “지금과 같은 파괴의 시대에 창조적 혁신을 하려면 전략보다 조직의 ‘문화’가 훨씬 중요하다”고 일갈했다. 무엇이든 당장 실행할 수 있고 실패해도 오히려 칭찬받으며 계속 새로운 시도를 이어갈 수 있는 문화가 그 어떤 화려한 전략보다 기업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문화를 만드는 건 결국 ‘사람’이라는 게 피터스 박사의 설명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이사회 구성 원칙’을 통해 ‘유연하고 창조적인 조직’을 만드는 방법을 제시했다. 피터스 박사는 “이사회는 30대 이하의 이사진 2명과 빅데이터와 정보기술(IT)에 능통한 전문가 1, 2명, 괴짜 같은 사람 최소 1, 2명, 정통 디자인 전문가 1명, 벤처캐피털리스트와 창업가 등의 경력을 가진 사람 2명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소개했다. 이어 “정통 경영학석사(MBA) 출신과 60세 이상의 사람이 이사회에 3명 이상 있으면 그 조직은 창조적일 수 없다”고 단언했다.
피터스 박사는 거대한 혼돈 속에 방향을 잃은 한국 기업들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유연하게 대응하고 무조건 시도해 보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게 이 시대 성공의 원동력”이라며 “이에 가장 적합한 건 바로 한국 기업의 문화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베트남전에 참전해 한국군과 함께 전투에 나섰을 때나 한국 기업들과 일했을 때의 경험담을 소개하며 “어떤 상황에든 적응하고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일단 시도하고 다시 시도하면서 결국 성공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에 놀랐다”며 “그 정신이 지금 다시 한국에 필요하다”고 말했다.
○ “진정한 창조성은 유연한 중소기업으로부터”
피터스 박사는 이날 행사장을 찾은 청중에게 “여러분은 아마 애플이나 구글, 삼성과 같은 큰 기업들의 혁신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싶었을지 모른다”며 “그러나 위대한 혁신기업인 구글조차 50년 뒤에 지금과 같은 기업은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덩치가 커지면 그만큼 창조성, 유연성, 혁신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현 시대의 혁신을 주도하고 사실상 미래를 창조하는 기업조차도 지속성장은 쉽지 않다는 얘기였다.
그는 “사람들은 미국을 기준으로 고용의 94%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에 생각보다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며 “하지만 이 시대의 진정한 창조성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사소한 것에서 최고를 만들어내는 중소기업에서 발견된다”고 강조했다. 작고 유연하고 빠르게 움직이는 중소기업의 성공 사례로부터 오히려 배울 게 많다는 것이다.
피터스 박사는 ‘최고의 화장실’로 유명한 미국의 한 유통회사의 얘기도 꺼냈다. 미국의 정글짐 인터내셔널 마켓이 ‘화장실 구경과 체험’을 위해서라도 고객들이 찾아오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매장 내 화장실을 세련되게 꾸몄다는 것이다. 피터스 박사는 “모두가 화장실부터 꾸며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찾아내 변화를 주는 게 창조성의 핵심이자 혁신의 원동력이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상업은행 메트로뱅크의 성공 사례도 거론됐다. 이 은행은 출근 전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이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도록 다른 은행보다 일찍 업무를 시작하고, 강아지 비스킷을 나눠줬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더 많은 고객이 은행으로 몰려들었다는 것이다. 피터스 박사는 “얼핏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금융’과 ‘강아지 비스킷’이지만 고객 중심으로 사고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가 세계 기업들의 생소하지만 ‘창조적인 혁신’의 사례를 소개하자 2000여 명의 청중은 깊이 공감하고 박수도 보냈다.
강연이 끝난 뒤 조동성 인천대 총장과 김동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피터스 박사와 토론을 벌였다. 조 총장은 “병목현상은 병의 꼭대기에서 일어난다는 말이 있다”며 “결국 파괴시대의 혁신과 창조성을 위해서는 리더십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현 시대에 맞는 리더를 키우려면 경영학 교육부터 바꾸어야 할 것”이라며 “‘경영 기술적’인 접근을 버리는 대신 철학과 통찰력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피터스는 “정확한 지적”이라며 “회의석상에서 영향력을 끼칠 시간에 현장을 돌아다니며 ‘경청’부터 해야 파괴시대를 넘어 생존하고 발전하는 기업을 만드는 리더”라고 강조했다.
고승연 기자 seanko@donga.com | 동아일보 2016.12.08